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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하야'를 번복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하야오

일본 애니메이션 장인 미야자키 하야오



안녕하십니까. 네이쳐입니다.
요즘은 새로운 카테고리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역시 게임이라는 단일 주제로 계속해서 글을 써나간다는건 너무 어렵군요.ㅠㅠ
오늘은 아시아 사람이라면 누구가 한 번 정도는 보았을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특이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유의 감성으로 만들어내는 그의 애니메이션은 어렸을적 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깊은 감동을 주는데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반적인 인생과 그가 평생을 걸쳐 만들어낸 명작 애니메이션들의 소개와 항상 작품이 나올때 마다 논란이 되는 미야자키 하야오 우익 논란, 혐한 논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배경

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1월 5일 일본 도쿄에서 한 아이가 태어납니다. 

한창 전쟁중이던 혼란스럽던 시대에 군인들이 득실대고 그보다 더 많은 사상자들이 생겨났던 끔찍한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미야자키 항공흥학' 이라는 비행기 제작을 가업으로 하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전쟁 중인지라 자연스럽게 미야자키 가문은 군용기 부품을 생산하기도 했었는데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명한 일본 전투기인 '제로센'을 생산하던 나카지마 비행기사의 하청 회사 였습니다.

전쟁과 평화 그리고 비행기라는 독특한 환경에서 자란 미야자키 하야오는 훗날 이 비행기에 대한 로망을 가지게 되고 그 영향은 고스란히 애니메이션에 녹아나게 됩니다.




1945년 일본 본토인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떨어진 인류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쓰였던 핵폭탄이 투하 된 후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합니다. 전시에는 군수물자를 생산하던 회사였고 전 후에는 부족한 물자를 만들기 위한 생필품 회사로 업종을 바꿨는는데 전쟁을 겪을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

타고난 허약 체질로 취미는 운동대신 독서와 작화였으며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에 흥미를 가지게 된 계기는 고등학생 시절에 토에이 동화의 '백사전'을 보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은 애니메이션과는 전혀 관련없는 학과를 졸업하였는데 대학 졸업 후 자신이 처음으로 만화에 관심을 가지게 했던 작품 '백사전'을 제작한 화사 토에이 동화에 입사하며 본격적인 애니메이터로서의 길을 걷게 됩니다. 

입사 이 후 토에이 동화에서 직업 회의를 느끼기도 하지만 당시 구소련의 애니메이션이었던 '눈의 여왕'을 본 이후로는 자신의 방향성을 완전히 굳히게 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의 회사인 지브리 스튜디오를 설립한것은 1980년대의 일입니다.

당시 토에이 동화에서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하고 있던 미야자키 하야오는 디즈니와 같이 본격적으로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아니메쥬에 항창 연재중이었던 만화를 도쿠마 쇼텐의 투자지원으로 1984년에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작품을 내걸게 되는게 그 애니메이션의 이름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입니다. 당연히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고 그와 동시에 자신만의 회사인 '지브리 스튜디오'를 설립하게 됩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부터 시작된 미야자키 하야오의 '비행기 로망'은 이 작품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작품에서 나타나는데요. 작품 전반적으로 살펴 보았을 때 단순히 자신이 보고자란 비행기나 군용기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상력이 투영된 디자인들이 많이 보입니다. 또한 이 감독의 작품에는 언제나 비행기 뿐만 아니라 자연을 소중히 하고 자연을 사랑해야 한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파괴되는 자연은 절대로 인간 자체를 파멸로 이끈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과 영향력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흥행 성공 이 후에 잠시 주춤 하는듯 한 모습을 모였던 '지브리 스튜디오' 였지만 1989년에 일본 전역에 충격적인 작품을 내놓게 되는데 그 작품이 바로 '마녀배달부 키키' 입니다. 간략한 내용을 설명하자면 마법을 쓸 수 있는 키키가 마을 사람들과 어려울려 살면서 일어나는 해프닝들을 담을 따스한 애니메이션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웃간의 정과 인간관계의 애뜻을 담고 있는 명작입니다.
상업적으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그간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발표한 작품들 (라퓨타, 토토로, 반딧불의 묘)를 합친것보다 많은 관객수인 265만명이라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1992년에 발표한 '붉은 돼지' 1997년에 발표한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등을 연달아 히트치면서 흥행보증을 넘어선 흥행 1위 수표가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 내에서의 지르비 스튜디오의 영향력은 한가지 신드롬을 만들어낼 정도로 그 영향력이 지대했었는데요.
일명 '라뷰타 신드롬'이라고 불리우는 신드롬으로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발표한 작품인 '천공의성 라퓨타'를 본 관객들이 작품에서 묘사된 하늘과 하늘에 떠다니는 성인 라퓨타에 너무나 큰 감명을 받은 나머지 아무 이유없이 하늘을 한번씩 처다보게되는 신드롬으로 한 동안 일본에 유행이었습니다.

미야자키하야오의 작품을 보면 그림체 그 자체가 동화를 읽어주는 듯한 그림체를 볼 수 있는데요.  그림체에서 만들어내는 지브리스튜디오 특유의 느낌과 다양하고 사실적인 표정들이 특징입니다. 
앞서 밝혔다 시피 비행기에 대한 로망이 있어 특히나 '붉은돼지'에 등장하는 모든 비행기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디자인 했으며 어린시절 일에 치여 바쁘게만 살아온 아버지와 병으로 일찍 어머니를 잃게된 환경 때문인지 가족애와 가족의 소중함을 작품에 녹여내는데 대표적인 작품은 '이웃집 토토로'입니다. 토토로는 특히나 자신의 어린시절을 상당히 투영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페미니스트'라는 설이 있는데 일본은 예전부터 특히나 여성인권이 낮은 국가로 꼽혔습니다.

전국시대에 칼자루만 부딪치면 한 명을 죽어야 했지에 남녀 성비가 1:9로 갈릴만큼 극심한 남녀성비를 겪고 나서는 더욱 심해 졌었는데요. 전국시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자의 미덕 = 남편에 대한 헌신과 순종 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에 태어난 그와는 상반되는 여성상을 많이 그리는데요. 모노노케 히메에서도 원령공주는 전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보통 남자보다 훨씬 전투적이며 심지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부모들이 음식에 정신팔려 돼지가 되고 처음 보는 귀신의 세상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하고 가오나시에게 까지 쫓기면서도 지혜와 재치를 발휘하여 부모를 구해내고 그 짧은 시간에 남자친구를 만들고 현실세계로 돌아오기까지 합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영화를 제외하고라도 이 감독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대부분 용감하고 슬기로우며 지혜롭습니다. 



작품을 만들어내는 스타일 또한 독특한데요.

감독의 위치에서 구상과 총괄을 맡을 뿐만 아니라 직접 기획서, 콘티, 레이아웃을 잡은 작화까지 직접 참여를 하는데요. 모든 부분에 직접 작업 참여를 하여 '별종'이라고 불리우기도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자신은 애니메이션 감독이 아니라 끝까지 애니메이터로 남고 싶다는 생각이지 않나 싶습니다.





은퇴와 우익 논란

미야하지 하야오는 은퇴를 상당히 많이 했는데요.

이 글 제목처럼 '하야'를 계속해서 번복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첫 번째 은퇴 발표는 관객 1450만명과 약 2000억원의 수입을 올린 전설적인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를 발표한 후인 1997년 7월 이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 뿐만 아니라 일본 박스오피스 전체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는데요. 자신의 후계자 였던 '콘도 요시후미'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4년 후인 2001년 7월에 또 한번에 기록을 송두리째 갈아치우는 명작을 발표하게 되는데요. 제가 처음 극장에서 접한 미야자키하야오 감독의 작품이기도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입니다. 2350만명의 관객동원, 일본 내에서만 300억엔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입을 올렷엇습니다.


(몇년 후에 또 봐요 !)


그 후 또다시 은퇴를 선언 했지만 당시 차기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감독을 육성하고자 '호소다 마모루'에게 맡긴 작품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제작하던 도중 회장 '도쿠마 쇼텐'이 제작 도중 감독을 교체해 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은퇴를 번복하고 미야자키 하야오 복귀 선언으로 다시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워낙 빡빡한 일정이었고 애초에 자신이 만들어낼 작품이 아니었기에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1600만 관객이라는 엄청난 흥행을 가져옵니다. 당시 한 인터뷰에서 "게임처럼 만들려고 했던것이 드라마 처럼 되어버렸다.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됬는지도 모른다."라는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이후 또 다시 은퇴를 하였는데 '이제는 나이가 많아 더 이상 작품 활동을 하기 힘들다.'는 이유였습니다만 역시나 복귀와 은퇴 번복의 장인인 마야자키 하야오 복귀 선언은 또 다시 이어졌고 2013년 다시 한번 작품을 발표하는데요. 이 작품이 바로 크게 논란이 되었던 '바람이 분다' 입니다. 논란이 된 이유는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 우익 논란과 일본의 군국주의



때문이었는데요. 미야자키 하야오 바람이 분다 라는 키워드가 상당한 검색량으로 트래픽을 한참 올리기도 했었는데요. 개봉당시 한국 에서는 불매운동 움직임도 있었던 작품입니다. 논란이 되었던 이유는 '신화가 된 제로센의 탄생' 이라는 표현에 문제제기가 되었습니다만 작품에서의 전쟁 합리화 묘사나 일본 군국주의 찬양과 같은 묘사는 일정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로센은 제2차 세계대전 일본 이 사용하던 전투기 이고 그만큼 민감한 소재이기에 더욱 논란이 되었었는데요. 이 사건 이전에도 '반딧불의 묘'에서는 일본을 제2차 세계대전의 단순 피해자라고 묘사했다는 비난이 있기도 했습니다만 미화되었다고 논란 되었던 부분은 평범한 소시민들이 전쟁통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묘사가 좀 과장되지 않았나 싶습니다만 과거에 잘못을 전혀 일절 인정하지 않는 일본이기에 더욱 민감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작품 초창기부터 혐한논란, 우익논란이 꾸준히 있었던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례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대한 글을 2013년 한 칼럼에서 공개하였는데요. 그 칼럼을 보면 '일본은 분명한 침략국이었다.'라는 내용을 확실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어째서 이런 잘못된 나라에서 태어나게 됬을까' 라는 생각을 어렸을 때 했었다는 말과 '일본을 인간만 없으면 정말 아름다운 땅이다.'라는 말을 적시하며 지금도 잘 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시사했고 더욱이 아베 정부의 헌법 개정 문제에 대해서는 강한 비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혐한시위에서 왜 우는지 묻자 한국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남긴 신오쿠보의 한 일본 여고생)


한국과 일본의 우익세력의 공통점은 우선 


1.혐오의 대상이 있다는 점과 

2.문제를 폭력적으로 해결하려 한다는것 

3.자신들이 생각에 반하는 사람은 어떤식으로는 공격을 한다는것


이 세가지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본의 우익세력은 한국 사람들의 상상이상으로 골통인데요.

일본 사회는 심지어 정부를 견제하는 JTBC 같은 방송 또한 전무할 정도 입니다. 우리 나라의 '썰전'같은 프로그램이 존재 하지도 않지요.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저런 소신발언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소신 발언으로 인해 일본 인터넷에서는 '좌익'으로 까이고 한국에서는 이와같은 사실 전달이 제대로 되지 못하여 '우익'으로 까이는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애니메이션 감독은 애니메이션으로 평가하는것이 맞지 않을까요?




이 글을 마치며


미야자키 하야오를 보면 한 길만을 걸어온 장인정신. 제가 일본에게서 부러운 점이기도 합니다.

이런 직업정신이 사회에 널리 퍼져있다는건 정말 배워야 하는 점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썰전'을 자주 보는데 전원책 변호사와 유시민 작가의 입담은 정말 '썰전'에서 보여주듯이 장인의 경지에 오르지 않았나 싶어요.ㅎㅎ

이런 장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을 보면 나도 언젠가 저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 전박에 걸친 평화를 사랑하자, 자연을 소중히 하자, 가족의 소중함을 알자와 같은 어쩌면 흔해 빠진 메세지지만, 이런 흔해 빠진 메세지를 마음 깊이 꽂아 넣어 준다는 점이 보는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것 아닐까요. 최근 다시 한번 은퇴를 번복한 미야자키 하야오 그의 번복은 언제가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