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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하늘이 우는 세월호 구름과 3년 만에 떠오른 세월호

수면 위 세월호 인양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최악의 인명피해를 낸 해상 재난 사고가 전남 진도군 관매도 에서 일어났습니다.

전체 승객의 476명 중 304명 (단원고 학생 및 선생님 250여명)의 실종, 사망자를 낸 세월호 사건입니다.

어느 나라던 이런 사고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사건에서 정부가 국민의 생명 보호 의무를 저버리고 사실상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여론 조작으로 세월호 유가족 들을 '자식 팔아 돈 벌어먹는 사람들' 이라는 프레임까지 씌웠습니다.

이로인해 '유족충'이라는 단어까지 유행을 하는 말도 안돼는 상황.

정확히 어떻게 일이 진행되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났고 왜 이제서야 3년 만에 떠오른 세월호 를 볼 수 있는지.

수면 위 서월호 는 어떤 진실을 수면 위로 떠올려 줄지 궁금합니다.







세월호 사건 경위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그 수많은 사람들이 구조되지 못했을까요?
상식적으로 폭침을 당하지 않는 이상 그 수많은 사람들이 빠져나오지 못했다는게 납득하기 힘듭니다.
이런 상식밖의 상황은 어쩌면 예언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세월호는 사실 출항 자체가 되어서는 안되는 여객선이었습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선박연령 규제완화가 통과되었습니다.
이 규제 완화로 인해 세월호는 옆나라 일본에서는 운항 자체가 금지된 노후선박을 사들여 올수 있엇죠.
심지어 노후된 선박에 유병언 일가가 경영했던 청해진해운의 과적.
선박 관리 소홀과 선원들의 안전교육 부실 수많은 사인들이 사고를 예언하고 있었습니다.


시간별로 세월호 사건 경위를 정리해 보자면

2014년 4월 15일 

16:30분 -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 교사 15명 3박 4일 제주도 수학여행 위해 안산 출발.
18:30분 - 인천 ~ 제주도 여객선 세월호 인청항에서 출항 지연.
21:00분 - 인천항에서 총 475명 태우고 출항.

2014년 4월 16일

08:45분 - 전남 진도군 관매도 부근에서 사고 발생.
08:55분 - 침수 시작 "방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과 함께 구명조끼 제공.
08:58분 - 목포해경철 상황실  "전남 진도군 관매도 부근에서 인철발 제주행 여객선 세월호 침몰중" 사건 접수.
09:10분 - 해양경찰청 구조본부 가동.
09:40분 - 구조대 첫 도착.
10:15분 - 선내 방송"여객선 침몰이 임박했으니 탑승객은 바다로 뛰어내리는 상황에 대비하라".
10:30분 - 배가 왼쪽으로 90도 이상 기울어짐.
10:35분 - 세월호 발전기 전원 끈김. 전기 차단.
11:00분 - 경기 교육청 "학생과 교사 340명 전원 구조됐다" 발표. 사실무근으로 확인.
11:20분 - 침몰.



이상한 점은 침몰하기 한 시간 전에 바다로 뛰어내리는 상황에 대비하라는 방송이 있었다는것.
그리고 한시간 동안 승객들이 뛰어내리지 않았다는것.
그 이유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08:55분 부터 지속적으로 방송된.

"방에서 움직이지 말라."

세월호 선장 은 선장으로서의 책임은 져버리고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되풀이 하고는 가장 먼저 배를 빠져나왔습니다.





세월호 사건의 의문점

범국민적 차원의 트라우마라고 할 만큼 엄청난 충격을 준 이 사건.
국정원 세월호 실소유설, 침몰직전 폭음 증언, 최태민과 최순실 일가의 사이비 종교 관련설 등등.
세월호 인신공양설 까지 수많은 의혹들이 있습니다만.
가장 큰 의혹은 바로

대통령의 7시간


국민의 안전을 책임을 져야하는 국가. 
런 국가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
그가 도대체, 무엇을, 어디서 하고 있었느냐는 지속적으로 제기되 왔는데요.
 3년이 지난 후 세월호 인양이 되고 있는 와중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입니다. 




조금 다른 상황입니다만. 

미국의 9/11 테러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초등학교에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는데요.

테러 보고를 받은 후 약 10분간의 망설임이 카메라에 포착되었었습니다.

이로인해 상당한 질타를 받았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이었는데요.

도대체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7시간 공백'이라는 말도 안돼는 공백기간이 있었을까요.

박근혜 탄핵이 인용된 지금까지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온갖 루머들이 난무했는데요.

박근혜 정윤회 동침설. 박근혜 마약 투약설. 박근혜 세월호 인신공양 제사설. 등등

과거 최태원 그리고 현재 최순실 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모든 루머가 지금까지도 난무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밝히지 않는 그 이유 도대체 뭘까요?



수 많은 루머와 설 중에서도 '세월호 인신공양설'이 큰 주목을 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찍이 박근혜 최태민의 사이는 김종필이 증언을 했었는데요.

이 둘의 사이가 단순한 지인 사이를 넘어 자식까지 있다는 증언을 했었습니다.

이를 뒷바침 하는것이 '프레이저 보고서'에 따르면 최태민이 박근혜의 정신과 육체를 완전하게 지배하고 있다.

고 밝히는데요. 이런 정황속에서 도저히 납득이가지 않는 정황이 하나더 발생하게 되는데 바로 황기철 해군참모총장 방산비리 수사 입니다.


황기철 해군참모총장은 세월호가 가라앉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는 즉각 지시를 내립니다.



"가용 자산을 모두 구조 현장에 투입해 해경을 지원하라."



그러나 이행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2번 씩이나. 

군필이 아니더라도 아실겁니다. 군대에서 '참모총장'이라는 자리는 단 1명 밖에 업는 총 책임직이며 그 명령을 절대적입니다. 이런 명령이 2번씩이나 내려졌는데도 이행되지 않은데는 더 큰 권한을 가진 누군가가 막았다는거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방산비리 덩어리인 군이 갑자기 황기철 해군 참모총장 방산비리 수사를 진행했다는 것은 황기철 참모총장을 압박하려 하지 않았나 하는 해석이 있습니다.

당연히 재판 결과는 무죄.

보국훈장 하나 더 주겠다고 했으나 현재 다 필요 없다는듯 사퇴하고 중국에서 살고 계십니다.



항상 대한민국은 국민이 국가를 걱정하는 나라였습니다.

국가는 국민을 개돼지로 생각했습니다.

무보수로 2년간 20대 청춘을 끌고가 강제노역을 시키면서도 다치거나 장애가 생기면 모든 잘못은 개인화됩니다.

군대 뿐만이 아니라 이 사회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죠.

다행이도 태안 반도 기름 유출, 삼풍 백화점 사태 등등. 

굵직한 재난 사건들에는 언제나 다신들을 희생하시는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에도 민간 잠수부들이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현장에 뛰어들었는데요.

박근혜 정부는 이런 영웅들에게 '업무상과실차사 혐의'를 뒤집어 씌웁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이제 시작이다.



세월호 인양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품은 유족들의 반대로.

그 후에는 정부의 반대로.

자식잃은 부모는 어떤 언어에도 그 단어가 없다고 합니다.

그 슬픔을 언어로 담아낼 수 없기에. 

너무 나도 긴 수학여행을 다녀온 아이들 절대 잊지 말아야합니다.

대한민국 재난 대처 능력의 현실을 또 인간의 이기심은 한계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꼭 밝혀야 합니다. 진실을.